이제는 생생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충분히 미화되어 버린 나자매의 세계일주 되새김질 첫 번째 이야기

 

5년 전, 꿈도 열정도 없었던 졸업을 앞둔 나와

준비하던 스튜어디스도 금융기관도 다 떨어지고 평범한 중소기업을 다니던 언니는

돌연 세계일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1

돌연? 우리의 세계일주는 ‘돌연’ 그 자체였다.

졸업을 반년 앞뒀던 때였다. 언니는 돌연 세계여행을 가자고 하였다.

나는 딱히 하는 건 없으면서 취업 걱정만 하던 졸업예정자였다.

그래서 세계여행이 피난처가 될 거라 생각했고, ‘그러자’ 했다.

 

언니는 영국으로 들어가는 게 싸다며 돌연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였다.

1인 당 34만 원이었다. 중국남방항공이었고 광저우를 17시간 경유하는 여정이었다.

막연했던 세계여행 계획과 준비가 티켓을 예매하자 급하게 진전되었다.

그사이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차근차근 세계여행 준비를 해나갔다.

배낭을 사고, 예방접종 가격 비교해서 접종을 완료하고, 머리를 했다.

언니는 출국 일주일 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언니는 출국 전날까지 예방 접종을 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MBTI 검사를 하면 항상 ISFJ만 나온다. 특히 J는 항상 높게 나왔다.

그에 반해 언니는 엄청난 P 성향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세계일주가 ‘돌연’ 그 자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언니가 세계여행 비용으로 나에게 천만 원을 빌려줬기 때문이지 않을까?

돈은 성격, 성향 따위 저 멀리 내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사실 내가 J 성향을 버리게 된 확실한 계기가 있었다.

서로 가고 싶은 나라를 정해서 그 나라에서 가고 싶은 곳, 대략적인 루트를 짜오자 했다.

나는 엑셀에 도착지, 경유지, 소요 시간, 이동 방법, 예상 비용을 전부 정리했다.

언니는 종이에 손글씨로 [그리스-아테네]를 적어왔다.

종이를 보고 나는 엑셀을 켜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포기하자. 포기하는 게 내가 살 길이다.’

 

2

우리는 다섯 살 차이 나는 자매다.

다섯 살이나 차이 나지만-MBTI도 다르지만-우리가 친한 이유와 여행 스타일이 잘 맞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같은 침대에서 잤다.

엄마가 자매는 붙여놔야 한다 생각해서 침대방, 공부방으로 나눠서 항상 방을 같이 썼다.

어린 시절 우리는 나란히 누워 먹고 싶은 것들을 나열하다가 잠이 들었다.

같은 방에서 자는 건 우리에게 당연한 거였다.

우리는 입맛이 잘 맞고 술을 좋아한다.

둘이서 내일로를 한적 있는데 술 한잔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에

둘 다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주종은 소주

매콤, 칼칼, 자극적인 안주를 좋아한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잠과 음식이 맞으니 같이 떠날 수밖에

 

3

여행 준비하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은 유럽 기차표를 미리 예약 안 한 거나 여행용 빨랫줄을 안 사간 것이 아니라

머리 스타일이었다.

난 세계여행자, 방랑자가 될 거라는 낭만에 젖어 샴푸 아낄 겸, 배낭에 머리 걸리면 불편하겠지 싶어서

단발과 쇼트커트 그 사이 어디쯤 길이로 머리를 자르고 펌을 했다.

살면서 한 선택 중에 가장 후회되는 선택 중 하나였다.

머리 때문에 여행 다니면서 내가 나오는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다. 사진에 담긴 내 모습이 너무 낯설고 못생겨 보여서였다.

어떻게든 해보려 컬러핀도 꽂아보고, 쿠바에서 부분 레게도 해보고, 멕시코에서 파마도 다시 해보았다.

다 부질없었다. 여행이 끝날 때가 돼서야 머리 길이는 어깨까지 왔다.

 

4

부모님의 허락이 제일 어려운 준비과정이라 생각했는데 걱정보다 쉽게 허락을 받았다.

엄마는 나를 데려간다는 조건으로 언니에게 세계여행을 허락했다.(그래서 나도 자동으로 허락을 당했다)

아빠한테는 엄청 쓴소리를 들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너희 인생 너희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지”라고 말씀하시며 허락해 주셨다.

얼떨떨했다.

가부장적인 경상도 남자 그 자체였던 아빠는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명확했다.

외박 안돼, 늦게 들어오면 안 돼, 아르바이트하지 말고 공부나 해…

이런 말만 듣다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라니…

기왕 말한 거 뻔뻔하게 밀어붙이자 싶어서

졸업 선물 겸 아빠의 DSLR 카메라를 달라고 했다.

그것마저 아무 말 없이 쥐어주셨다.

언니는 얼떨떨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알코올의 알딸딸함으로 바꾸었다.

난 괜히 아빠 심기 건드릴까 헛소리하는 언니의 입을 막아버렸다.

 

5

그렇게 우리는 세계일주 준비를 해나갔다.

돌아오는 티켓은 없다.

정해진 루트도 일정도 없다.

런던행 티켓과 배낭, 우리의 몸, 들뜬 마음뿐이었다.

2018년 5월 16일 우리는 김해국제공항에서 런던 히드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여행 준비하기: 세계여행 예방접종

해외감염병NOW(질병관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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